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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한국 현대문학에서 보기 드물게 스릴러적 긴장감과 문학적 깊이가 동시에 살아 있는 작품이에요. 기억이 흐려지고 자신을 지탱해오던 모든 것이 점점 무너지는 노년의 남자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애써 붙잡으며 진실에 접근해가는 이야기인데, 단순히 범죄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을 넘어서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하고 동시에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줘요. 짧은 분량임에도 아주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고, 읽다가 스스로 여러 번 되돌아가 문장을 곱씹게 될 만큼 밀도가 높아요.
줄거리
이야기는 은퇴한 노년의 전직 연쇄살인범, 김병수가 자신의 삶과 기억의 흐름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전개돼요. 그는 과거에 사회가 정하지 못한 악한 사람들을 대신 처단해왔다는 자기식의 정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살인을 멈춘 지 오래이고 일상의 소소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요. 문제는 그의 알츠하이머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기억이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놓쳐버리는 순간이 늘어나면서 글 속에도 불안정한 문장들이 하나둘씩 늘어나요.
어느 날, 병수는 딸 은희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남성 태주를 보게 되는데 이 남자가 평범하지 않다는 직관이 찾아와요. 그는 자신이 예전에 살펴왔던 범죄자의 흔적과 비슷한 무언가를 발견하면서 태주가 연쇄살인범일 수 있다는 강한 의심을 품게 돼요. 그러나 문제는 그 의심이 자신의 실제 경험인지, 아니면 점점 무너져가는 기억이 만들어낸 환상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독자는 병수의 글을 통해 그 의심을 따라가면서도 그의 기억의 빈틈 때문에 계속 혼란을 겪게 되고, 결국 병수가 믿는 것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판단하기 어렵게 돼요.
이 소설은 병수의 현재 서술과 과거의 기억이 뒤섞이면서 전개되고, 어느 것이 사실인지 끝까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남겨두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가 ‘기억’이라는 주제와 완벽하게 맞물려 있어요. 김영하 작가는 기억의 취약함을 문학적 장치로 활용해 독자를 계속 불안하게 만들고, 병수의 시선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으로 작용해요.
노년의 살인자라는 설정이 주는 긴장감
일반적인 스릴러 소설이 범인의 정체를 찾는 방식이라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독자가 처음부터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야기는 범인을 추적하는 방향이 아니라 범죄자가 자신의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쪽으로 흐르고, 바로 이 점이 작품을 강력하게 만드는 특징이에요. 그는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순간이 생기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자신이 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저지른 것인지 구분하지 못해요. 때문에 독자는 그의 불안과 혼란을 그대로 체험하게 되고, 그 혼란 속에서 만들어지는 미세한 심리 변화가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켜요.
김영하 작가의 문체와 작품 분위기
김영하 작가의 문장은 간결하고 차갑지만 동시에 정교해요. 과장된 감정이나 설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짧은 문장 속에 감정과 의미를 압축하는 스타일이라 독자는 문장을 세밀하게 따라가야 해요. 이 작품에서는 특히 병수의 기억이 무너지는 순간을 문장의 구조로 표현하는 부분이 많은데, 문장이 갑자기 툭 끊기거나 반복되는 패턴으로 나타나면서 독자가 병수의 내면 상태를 직접 체험하게 돼요. 이처럼 문체 자체가 이야기 전개와 완전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감각적 장치로 작용해요.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과의 비교


영화는 원작의 핵심 서사를 유지하면서도 스릴러적 요소를 강화하고 사건의 구조를 조금 더 명확하게 정리해요. 몇 가지 큰 차이를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아요.
1. 인물의 해석이 달라요
소설에서 병수는 완전한 1인칭 서술자이기 때문에 독자가 보는 세계는 온전히 그의 기억을 기반으로 해요. 그의 말이 사실인지 착각인지 알 수 없고, 불신이 끊임없이 생겨요. 그러나 영화에서는 병수의 기억이 왜곡되더라도 관객은 화면을 통해 어느 정도 객관적인 정보를 판단할 수 있어요. 이 차이 때문에 영화의 병수는 소설보다 조금 더 ‘외부에서 파악 가능한’ 인물로 느껴져요.
2. 스릴러적 긴장감의 성격이 달라요
소설은 병수의 정신세계가 붕괴하는 과정 자체가 긴장감의 핵심이에요. 반면 영화는 액션과 사건 전개, 추격전 등 시각적 긴장감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덕분에 영화는 에너지와 속도감이 있고 사건의 윤곽이 선명하지만,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모호함과 공포는 많이 줄어들어요.
3. 결말의 차이
소설의 결말은 여전히 해석의 여지가 많아요. 병수의 마지막 서술이 사실인지, 환상인지 완전히 단정할 수 없고, 독자에게 열린 결말을 제공해요. 기억이라는 주제를 끝까지 유지하기 위한 장치죠.
하지만 영화는 결말을 좀 더 명확하고 극적인 방향으로 정리하고, 병수와 태주의 대립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감정의 향방을 분명하게 해요. 이는 대중적인 서사 방식에 맞춘 변화라고 할 수 있어요.
4. 은희 캐릭터의 존재감
소설에서 은희는 병수의 걱정과 사랑의 대상이지만, 모든 사건이 병수의 시점을 통해 서술되기 때문에 은희의 입체적 모습은 많이 드러나지 않아요. 그러나 영화는 은희를 보다 구체적으로 등장시키며 병수와의 관계를 더 또렷하게 보여줘요. 이 차이 때문에 영화는 부녀 관계의 감정선이 더 뚜렷하게 전달돼요.
5.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소설에서는 병수의 기억이 계속 비틀리기 때문에 사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고, 독자는 무너지는 정신세계 속을 헤매게 돼요. 하지만 영화는 이 모호함을 일정 부분 정리하고 사건의 구조를 분명하게 제시해요. 장르의 차이가 자연스럽게 만든 변화예요.
원작과 영화, 무엇이 더 강렬한가
두 작품 모두 완성도가 높지만, 방향성이 달라서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소설은 기억이 붕괴되는 내면의 공포를 아주 정교하게 묘사해서 독자를 깊은 혼란 속에 빠뜨리고, 영화는 시각적 긴장감과 사건 전개를 통해 보다 강렬하게 감정을 자극해요.
다만 원작 소설은 그 특유의 문체와 서술 방식 덕분에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심리적 공포, 즉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훨씬 깊게 전달해요.
작품의 주제와 상징
‘살인자의 기억법’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으며,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 또한 기억의 조작과 착각 위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요. 병수의 서술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독자는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고, 바로 이 불신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감정이에요. 기억을 잃어가는 살인자가 마지막 남은 판단력을 의존해 진실을 붙잡으려는 과정은 한 인간의 붕괴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정신이 가진 취약함을 극대화해요.
추천 포인트
짧지만 강렬한 한국 스릴러 문학을 찾는 독자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에요. 빠른 전개, 높은 밀도, 독특한 설정, 그리고 김영하 작가의 냉정하고 간결한 문체까지, 여러 요소가 완벽하게 맞물려 있어요. 영화로 먼저 접한 분들이라면 영화가 명확히 보여주지 않았던 병수의 내면과 모호한 세계를 소설에서 더욱 깊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독자에게 추천해요
심리 묘사가 강한 스릴러를 좋아하는 분, 독자의 해석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작품을 선호하는 분, 기억이라는 소재가 주는 불안정성을 흥미롭게 느끼는 분에게 특히 추천해요. 또 분량이 짧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지만 여운은 오래가기 때문에, 가볍게 시작했다가 깊은 감정적 충격을 경험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잘 맞는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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