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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소설로 만나는 한 남자의 양심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처음에는 아주 조용한 소설처럼 느껴져요. 분량도 100쪽 남짓이라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제목도 소박해서 거대한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은 아니죠. 그런데 막상 읽고 나면 생각보다 훨씬 오래, 깊게 마음속에 남아요.
그리고 이제 이 이야기의 울림은 책을 넘어 영화로도 이어지고 있어요. 킬리언 머피가 주연과 제작을 맡은 동명 영화는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었고, 수녀원 원장 역을 맡은 에밀리 왓슨은 이 작품으로 은곰상 여우조연상을 받았어요.RTE+1
이 글에서는 소설과 영화를 함께 살펴보면서, 이 짧은 이야기가 왜 이렇게 오래 남는지, 무엇이 우리를 자꾸 되돌아보게 만드는지 천천히 이야기해볼게요.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배경은 1985년 크리스마스 직전의 아일랜드 소도시 뉴로스예요. 나라 전체가 실업과 빈곤에 시달리던 시기,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 상인으로 일하며 아내와 다섯 딸을 부양하고 있어요. 부유하진 않지만,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정도의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죠.
빌은 한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혼외자로 태어난 탓에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 편견과 불안정 속에서 자랐던 인물이에요. 다행히도 그를 거두어준 고용주 부부 덕분에 교육과 일자리를 얻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자신의 안정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도 민감하게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죠.
소설의 사건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빌이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가면서 시작돼요. 우연히 창고에 갇혀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렴풋이 눈치채게 되죠. 이 수녀원은 실제 아일랜드 현대사에서 엄청난 인권 침해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 막달레나 세탁소를 모델로 하고 있어요. 막달레나 세탁소는 20세기 후반까지 가톨릭 수녀회가 운영한 시설로,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 혹은 단지 가족이나 사회의 편견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이 강제 수용되어 노동과 학대에 시달렸던 곳이에요.
빌은 자신이 본 것을 잊어버리려 하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감각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점점 더 깊은 갈등에 빠져들어요. 소설은 이 갈등의 과정을 빌의 내면에 붙어서 집요하게 따라가면서, 개인의 양심과 공동체의 침묵이 맞부딪히는 순간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요.
줄거리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 선 한 사람
줄거리는 단순해요. 빌 펄롱은 매일처럼 석탄을 배달하고, 겨울이 깊어갈수록 주문이 더 많아져 바쁘게 일해요. 도시에는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난방비를 감당하지 못해 두꺼운 코트를 입고 집 안에서도 떨고 있는 사람들, 전기요금을 못 내 끊긴 집들이 점점 늘어나요. 빌은 이 풍경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모든 것을 잃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수녀원 창고에서 석탄을 나르던 빌은 한 소녀를 발견해요.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는 이 소녀는 제대로 된 설명도,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갇혀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빌은 말 그대로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감각을 지울 수 없게 돼요.
하지만 그가 속한 마을은 가톨릭 교회와 수녀원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곳이에요. 사람들은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자신의 생계와 평온을 위해 모른 척하며 살아가죠. 빌의 아내 역시 “괜히 나섰다가 가족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그에게 조심하라고 이야기해요.
이후 이야기는 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둔 며칠 동안, 빌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이 그의 삶을 어떻게 흔들어놓는지에 집중해요. 거창한 정치적 구호나 거대한 혁명 대신, 눈 내리는 겨울밤과 집 앞의 강물, 석탄을 실은 마차, 소녀의 떨리는 몸 같은 장면들이 조용하게 쌓이면서 이야기를 밀어 올리는 구조예요. 그렇기 때문에 결말의 선택이 더 크게 다가와요. 독자는 빌이 무엇을 할지 지켜보면서, 동시에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돼요.
소설이 말하는 것들
침묵과 공모, 그리고 끝내 남는 작은 사랑
이 소설의 인상적인 부분은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정말 사소해 보이는 것들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점이에요. 빌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줄 때 나누는 짧은 대화, 아침마다 아내가 차려주는 식탁, 갑갑한 일상 속에서 잠깐 스치는 향기 같은 것들이 계속 등장해요. 이 작은 장면들이 빌이 지키고 싶어 하는 삶의 전부이자, 그가 선택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죠.
하지만 동시에, 키건은 그 사소한 일상들이 사실 얼마나 위태로운 경계 위에 서 있는지 보여줘요. 안정된 가정이라고 생각했던 삶이 실은 수녀원과 교회, 그리고 마을 전체가 유지해온 침묵 위에 세워져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독자 역시 편안하게 이 소설을 읽기가 어려워져요.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메시지는 필립 라킨의 말과도 연결돼요. 우리 가운데 살아남을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 클레어 키건은 화려한 연설 대신, 누군가를 지키려는 조용한 몸짓, 아무도 보지 않아도 결국 내 양심을 저버릴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같은 것들을 통해 사랑의 형태를 보여줘요. 그래서 이 소설은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마지막에는 인간의 품위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남아요.
클레어 키건의 문장과 서술 방식
짧지만 밀도 높은, 한 편의 긴 시 같은 소설
이 작품은 실제로 역대 부커상 후보작 가운데 가장 짧은 작품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분량이 짧다고 해서 가볍게 읽히지는 않아요. 번역가가 말하듯, 키건의 문장은 마치 눈결정처럼 아주 섬세하고, 안에 무수한 의미를 압축해 숨겨두고 있는 느낌이에요. 한 번 읽고 지나치면 보이지 않던 문장이 두 번째, 세 번째 읽을 때 느닷없이 울림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키건은 설명을 거의 하지 않는 작가예요. 인물의 감정을 친절하게 해설해주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 침묵, 눈길을 돌리는 장면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보여줘요. 그래서 독자는 인물 곁에 붙어서 작은 표정 변화와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게 돼요.
또 등장인물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는 작가답게, 인물이 스스로 인정하지 않은 감정을 작가가 대신 폭로하지 않아요. 이 점이 소설 전체를 더 조심스럽고, 동시에 더 진실하게 느껴지게 해요.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동명의 영화는 팀 미엘란츠 감독이 연출하고, 킬리언 머피가 제작과 주연을 맡았어요.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소설과 같아요. 1985년 아일랜드 소도시, 석탄 상인 빌 펄롱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수녀원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그 이후 자신의 과거와 마을의 침묵, 교회의 권력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예요.
이 영화는 2024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경쟁 부문에 초청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수녀원 원장 수녀를 연기한 에밀리 왓슨은 이 작품으로 베를린에서 은곰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작품의 존재감을 더 강하게 각인시켰죠.
영화는 소설의 서사를 비교적 충실하게 따라가면서, 빌의 침묵과 망설임, 그리고 결심의 순간을 화면으로 옮겨요. 흙빛 하늘, 축축한 겨울 공기, 석탄 먼지에 절은 거리 같은 시각적 요소들이 소설에서 느껴지던 우울하고 축축한 분위기를 잘 살려줘요. 특히, 강가를 내려다보는 빌의 뒷모습, 어두운 창고 안에서 들려오는 숨죽인 울음소리 같은 장면들은 긴 설명 없이도 관객에게 상황의 무게를 전해줘요.
킬리언 머피는 말수가 적고 표정이 크지 않은 인물을 굉장히 밀도 있게 연기해요. 눈빛과 호흡만으로도 내적 갈등을 드러내는 배우라서, 빌의 망설임과 두려움, 그리고 어떤 결정에 이르는 순간까지의 변화를 세밀하게 표현해요. 관객은 빌이 입을 열지 않아도 그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무엇을 포기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읽게 되죠.
영화는 소설보다 당연히 더 구체적인 이미지와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막달레나 세탁소의 현실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체감되기도 해요. 다만 소설이 가진 여백과 암시의 미학, 말하지 않고 남겨두는 부분의 힘이 영화에서는 조금 더 설명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어서, 소설을 먼저 읽었을 때와 후에 읽었을 때 감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어요.
원작과 영화의 차이와 함께 보면 좋은 포인트

소설과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지만, 둘을 함께 보면 오히려 각자의 강점이 더 또렷하게 느껴져요.
소설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 잠깐 켜지는 생각, 스치듯 떠오르는 기억, 문 뒤에서 들려오는 숨소리 같은 것들을 언어로 아주 조심스럽게 포착해요. 덕분에 빌의 내면을 훨씬 더 깊게 따라갈 수 있고, 왜 그가 그렇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지, 무엇이 그를 붙잡고 있는지 이해하게 돼요. 반면 영화는 침묵과 얼굴, 공간과 빛을 통해 이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해요. 빌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책에서 몇 페이지에 걸쳐 묘사된 갈등이 한 번에 전해지는 순간들이 있어요.
둘을 함께 볼 때 특히 집중해서 보면 좋은 지점은 몇 가지 정도예요.
크리스마스라는 배경이 가진 아이러니, 수녀원이 가진 절대 권력이 어떻게 일상의 평온과 교환되고 있었는지, 그리고 빌이 무엇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같은 부분이에요. 결국 이 이야기는 거대한 악과 싸우는 영웅담이 아니라, 자기 집 안의 따뜻한 식탁과 바깥의 차가운 공기 사이를 오가며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예요. 그 지점이야말로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이기도 하고요.
추천 포인트
짧지만 오래 남는, 크리스마스마다 꺼내 읽고 싶은 이야기
이 책과 영화를 함께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둘 다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에요.
내가 속한 사회가 어떤 폭력과 불의를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디까지 침묵할 수 있을까. 내 작은 선택이 내 가족의 안락함과 다른 누군가의 생존을 가르는 순간이 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 질문을 과장 없이, 하지만 피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여요. 그래서 다 읽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지만, 그 불편함 때문에 오히려 인간과 사회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에요.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분량도 짧아서, 어느 겨울 밤에 천천히 읽고 다시 펼쳐 보기 좋은 작품이기도 하고요. 영화 역시 같은 계절감을 담고 있어서, 책을 읽은 후에 영화를 보거나,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분들께 특히 추천해요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 작품을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인 묘사보다는 조용한 서사를 선호하는 분들, 분량은 짧지만 여운이 긴 소설을 찾는 분들, 그리고 한 사람의 도덕적 선택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들께 이 책과 영화를 함께 권하고 싶어요.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읽는 동안은 물론,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해서 마음에 질문을 남겨요. 그리고 영화는 그 질문에 생생한 얼굴을 부여해줘요. 개인적으로는 두 작품 모두, 한 번이 아니라 두세 번씩 다시 떠올리게 될 것 같은 이야기였어요. 작은 것들이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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