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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구조 속에 담긴 가장 강렬한 복수극
히가시노 게이고의 회랑정 살인사건은 그의 수많은 미스터리 작품 중에서도 유독 ‘클래식’한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에요. 1991년에 처음 발표된 이후 드라마와 연극으로도 제작되었고, 최근에는 새 표지로 개정판이 출간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죽어도, 죽여도 괜찮다’는 한 여인의 절절한 복수극이에요. 사랑이 증오로, 애정이 절망으로 바뀌어가는 감정의 흐름 속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치밀한 심리 묘사와 반전 구조가 폭발합니다.
줄거리 요약
모든 이야기는 재벌 이치가하라 회장의 죽음에서 시작됩니다. 그의 사십구재를 앞둔 날, 고풍스러운 료칸 ‘회랑정’에 유산 상속과 관련된 아홉 명의 사람들이 모이게 되죠. 그들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반년 전, 같은 회랑정에서 한 커플이 동반자살을 했다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날 밤 노파가 꺼내든 한 장의 편지로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저와 저의 애인은 자살당했습니다.’ 그 한 문장으로 회랑정의 분위기는 급격히 얼어붙습니다. 누군가가 ‘사랑하는 연인을 죽게 만든 진짜 범인’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참석자 모두가 용의자가 되는 미스터리가 시작됩니다.
주인공의 복수, 노파의 가면을 쓴 여인
이 소설의 중심에는 기리유 에리코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연인 지로를 잃은 후 모든 것을 잃은 절망 속에 살아가죠. 경찰은 두 사람이 자살했다고 결론 내리지만, 에리코는 그게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지로는 결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녀는 지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에게 복수하기 위해 노파로 분장한 채 다시 회랑정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유산 상속이 이루어지는 날 밤, 그녀는 범인의 방에 숨어들어 목을 졸라 죽이려 하지만 이미 범인은 죽어 있었어요. 누군가 그녀보다 먼저 그를 죽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또 다른 살인자’는 누구이며, 왜 같은 대상을 향해 칼날을 들이댔을까요?
회랑정의 불길 속에서 드러나는 진실
회랑정 살인사건은 전통적인 폐쇄된 공간 구조를 따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탐욕, 속죄, 사랑, 복수의 감정이 얽혀 단순한 추리소설 이상의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번 작품에서 “사건의 논리”보다 “사람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요.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묻는 구조죠. 특히 결말에 이르면 독자는 모든 복선이 하나로 이어지며 주인공의 선택이 얼마나 처연하고 비극적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죽여도 괜찮다’는 말의 의미가 뒤바뀌는 순간, 이 작품은 복수극을 넘어 사랑과 인간 본성의 미스터리로 완성됩니다.
작품의 매력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변주
‘회랑정 살인사건’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지만, 그가 후기에 보여주는 심리적 깊이와 인간 이해가 이미 자리하고 있어요. 트릭보다 감정에 초점을 둔 서사 전개, 여성 화자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섬세한 복수 이야기, 그리고 폐쇄 공간에서 벌어지는 연쇄 반전 구조. 이 세 가지 요소가 맞물리며 작품의 긴장감을 높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성 심리를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여성의 시선을 통해 복수의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해냅니다. 그 덕분에 ‘사건’보다 ‘감정’이 기억에 남는 드문 미스터리가 되었죠.
사회적 메시지, 인간의 욕망과 외모지상주의
회랑정 살인사건은 단순히 개인의 복수극에 그치지 않습니다. 작품 속에는 자본주의의 탐욕, 외모 지상주의, 인간의 허위의식 같은 당시(1990년대 일본) 사회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사랑을 잃은 한 여인의 얼굴은 화상으로 일그러지고, 그 상처는 그녀의 내면과 사회적 시선의 잔혹함을 동시에 상징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설정을 통해 ‘인간은 외모와 돈에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이 부분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이유예요.
결말 해석, 두 번 죽은 여자, 그리고 진정한 복수
이 소설의 결말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에서도 손꼽히게 논란이 많습니다. 주인공의 복수는 완성되지만 그 복수의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아요. 그녀가 맞닥뜨리는 진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랑, 미움, 정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었죠. 결국 『회랑정 살인사건』은 “인간은 사랑 때문에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가”를 묻는 작품입니다. 그 처절한 결말은 읽는 이에게 불편할 정도로 강렬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비밀』, 『숙명』처럼 감정의 반전이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좋아하는 분
- 전통적인 밀실 추리, 폐쇄 공간 미스터리를 선호하는 독자
- 한 여인의 심리와 복수를 중심으로 한 서사 중심형 미스터리를 찾는 분
- 사회적 메시지와 인간 심리를 함께 느끼고 싶은 독자
총평
회랑정 살인사건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작품 중에서도 완성도가 매우 높은 본격 미스터리입니다. 단순한 살인사건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욕망, 그리고 복수의 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처음엔 범인을 찾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독자는 ‘사랑이 만든 비극’이라는 주제를 마주하게 돼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이라면 회랑정 살인사건은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고전적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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